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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그림자(2)

  • 2021년 6월 9일
  • 1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7월 8일



2) 소망을 잃어갈 때


지금은 잊혀져 이름조차 까마득한 자, 모든 민족들 전에 있었고, 모든 조상들의 아버지였던 셈은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주님 한 분께만 예배 드리는 자였고, 사람들 사이에선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며,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궁창과 땅이 물로 덮히기 이전과, 하나님의 심판 이후 도래한 새로운 세대 가운데 살아가던 그는 역사의 산 증인이자 하나님의 증언자로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 집안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경험한 그의 증언을 듣는 무리는 극히 적었다. 그의 형제들과 후손들은 자신들의 정처없는 길을 찾아 헤매었고, 세상을 그들의 임의대로 다스리는 정복자, 용사로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은 탑을 쌓는가 하면, 서로의 땅을 침범하여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의 아버지 노아의 시대처럼, 새로운 시대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같은 죄를 짓는 사람들을 보며 셈은 절망하였다.


‘이리 사람들이 전과 같이 죄를 짓는다면, 어찌하여?’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소름돋도록 피부로 느낀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생명들을 제외하곤, 이 세상의 모든 역사와 불순한 영광들이 물로 씻기어 사라져 갔다. 그가 경험한 전능하신 분께서 자비를 거두신 심판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죄의 참혹한 결과였다. 방주의 사건 이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전과는 판이할 정도로 거칠게 바뀌었고, 사람들의 수명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었다. 후손들의 외형도 척박한 환경으로 인한 탓인지, 자신의 시대보다 작아져, 마치 자신이 네피림이 된 것 마냥 느껴질 지경이었다. 더불어, 셈은 자신의 후손들이 자신보다 먼저 삭고 늙어, 그의 곁을 떠나는 비극을 경험하여야만 했다. 이 안타까운 상황은 그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닌, 그의 가르침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후손들의 수명이 그들의 조상들보다 짧았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가르침은 급속도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지금은 자신과 그의 아들들이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다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한번, 이 세상이 하나님 없이 살아갈 거란 불확실한 미래, 큰 두려움이 셈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또 저희를 살아가게 하신단 말인가?’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고 뛰어났지만, 하나님의 눈과 지혜에는 한치도 도달할 수 없었다. 그저,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단 하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변치 않는 면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눈, 그들의 삶, 변치 않는 타락의 길, 죄인의 마음이었다. 셈은 자신의 후손들에게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그 분만을 섬겨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사람들은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거나, 무시하거나, 아예 믿지 않기 시작하였다. 셈에게 있어, 자신이 겪은 이야기는 절대로 잊어선 안되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한동안, 사람들은 그들의 주님을 두려워하며 지내곤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잊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살아가는 짧은 인생 동안, 이 세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하루였기 때문이었다. 각기 자신만의 길로 떠난 사람들은 그들이 깨닫지 못했던 옛 일들을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와, 그들의 우상들로 채워가기 시작하였다. 또, 그들은 서로의 침략을 막기 위해 험준한 성벽을 쌓고, 많은 민족을 이루었다. 형제들은 원수가 되었고, 한 핏줄이었던 가족들은 서로를 물어 뜯었다. 오로지, 그의 오랜 후손 중 한 명인 아브람이란 청년만이 사람들이 절하는 우상의 본질, 곧 사람이 만든 것을 사람이 숭배한다는 거짓에 회의감을 느끼고,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존재란 진실에 다다랐을 뿐이었다. 말씀을 받은 그는 사람들에게 열심으로 하나님을 가르쳤다. 문득 느낀 그리움에, 셈은 그의 어린 후손을 떠올렸다. 지금 그 아이는 어찌 지내고 있을런지….아버지도 주님 품으로 떠난 지금, 믿음 가운데 이리 홀로 서 있을 때에, 같이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을 그리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실례일까? 주님께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신다. 고로, 사람들은 모든 지혜에 통달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항상 부족함 가운데 살아가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에, 영원토록 무지한 존재로 살아간다…..’


남들에게 있어 그는 왕이요, 사람들을 이끄는 하나님의 예배자이기도 하였던 셈은 어느 순간부터 혼자가 되어버린 그의 삶 속에 흉터처럼 새겨진 질문이 자리 잡았다. 이 욕심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으나, 막무가내로 아무것도 모르는 후손 하나를 붙잡고 털어 놓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후손들은 셈을 보면서 부족함이 없다 자부하였으나, 그는 그들이 모르는 갈증이 존재하였다. 그저, 사람에 불과한 자신의 심중에 자리잡은 이 공허한 사실에 응답 해주실 주님의 음성을 기다릴 수 밖에 없을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셈은 여느 날처럼 그의 사람들로부터 그가 다스리고 있는 예루(마을)가 어떠한지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이자, 그의 증손자 에벨이 발견한 소식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였다.


“저도 처음엔 이 자가 무엇을 하는지 확신이 서질 않아, 시간을 들여 그 자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욕하며 피해 다니는, 더럽고 병 든 무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이들을 대접 하였습니다.”


셈은 에벨의 말을 듣고, 이를 이상히 여겼다. 외지에서 오는 객들을 대접하고 복을 비는 일은 자신도 하는 일이었다. 허나, 이처럼 발 붙일 곳 없는 사람들을 자진하여 받아들이는 자는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같은 곳에 있어, 발견하기 쉽다는 얘기를 들은 셈은 간소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그를 찾아갔다. 조그마한 샘물이 솟아 흐르는 근처에, 자그마한 방과 같은 집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셈은 그 곳에서 자신이 듣던 청년을 발견하였다. 다른 이들과 비교해도, 빼어난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얼굴이었다. 어디 하나 남들보다 특출난 점은 보이지 않았으나, 용사들의 눈매와는 거리가 먼, 맑은 눈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평안 하시오(샬롬)? 폐가 안 된다면, 잠시 쉬었다 가도 되겠소?”


“예, 어르신. 이쪽에 앉으셔서 편히 계십시오.”


셈은 경계를 풀고, 처음 보는 이를 따라 가, 그가 일러준 자리에 앉았다.


“고맙네.”


셈이 물을 세도 없이, 그의 앞에 발을 씻을 물과 간단히 요기를 할 음식이 차려졌다. 그는 군말 없이 차려준 음식을 먹으면서, 집 주인의 행동을 살폈다. 그는 피골이 상접한 노인에게 물을 떠주어 먹이고 있었다. 선한 그의 모습에 호기심이 차오른 셈은 그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겐가? 지금 하는 일이, 자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걸 알지 못하는가?”


그는 고개를 돌려, 셈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이윽고, 그가 대답 하였다.


“제 유익은 되지 못 할 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유일하신 주님께 영광이 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진실이 희미해져 가는 이 세상 가운데, 이 고백은 기이한 일이었다. 지금 이 자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를 꺼냈다 생각이 든 셈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자신 앞에 있는 청년에게 말하였다.


“악의를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니, 너무 서운해 말게나. 그저,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를 섬긴다 한들, 그것이 자네에게 어떤 열매를 맺어다 줄지 누구도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리 생각하다 보니, 자네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하여 물어본 것이라네.”


“그러셨군요. 그럼, 제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두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내 주님을 향한 이 작은 믿음 하나가 어르신의 믿음에도 일부가 됨을 알고 있습니다.”


셈의 눈 앞에 있는 청년의 첫 인상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이 성취하는 열매를 바라고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눈 앞에 아무런 유익도, 결과도 바라지 않고 살아 간다는 이방인의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이 자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영문을 몰라 계속 물었다.


“무릇 종들은 주인에게 복종하는 법이네. 낮은 이가 높은 이를 섬기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란 소리지. 하지만, 자네의 모습은 이 세상과는 역행하여, 거꾸로 서 있는 것과 진배 없으니….말해주게, 지금 자네가 하는 이 모든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들이 어떻게 큰 결과로 이뤄 진다는 말인가?”


“모릅니다.”


“모른다구? 모른다는 것만큼 무책임한 답변은 없을 것 같네만.”


“전, 제가 아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모른다 말할 것입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안다 시인하면, 그것은 제 자신을 높이는 일이 될 테니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알려주신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에 모른다 답할 것입니다. 그저, 이 시간 제 눈을 열어 보게 하시는 곳에서, 가장 높으신 분의 뜻을 이루려 할 따름인 것이죠.”


“지금 자네가 돌보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런다는 것인가? 그 자가 악한 사람 일지도 모를 뿐더러, 하나님의 벌을 받아 그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사람들을 도왔다간, 하늘에 계신 분께서도 자네에게서 그 분의 눈을 가리우실지도 모르고, 더 나아가,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넬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진 못 할 터인데?”


“그 사람이 의인인지 악인인지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내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에, 그 분을 알리는 일 외엔 대꾸할 필요는 없겠죠. 저보다 더 잘 아는 분이시니까요. 물론 힘들고 괴로울 터이나, 절 이끄시는 분께서 흡족해 하신다면, 끝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전 그 분에게만 순종해야 하니까요.”


처음 보는 이의 말에, 셈은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자신의 후손들의 삶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었기에,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자를 더욱 자세히 알아보려, 다시 입을 떼었다.


“자네의 하나님이란 분께서는 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자넬 이리 살게 하시는 것인가? 자네가 위대하신 분께서 보내신 사자라면, 내게 말해주게나. 어찌, 그 분의 능력으로 이 억압받고 힘 없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윤택히 채워 주시지 않느냔 말인가? 어찌하여, 모든 것을 아시는 분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으시는지 알고 싶구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전 그 질문에 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앎과 모름을 같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안다는 것을 높이고, 모른다는 것은 수치로 여깁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은 아는 것만큼,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모르는 것을 전능하신 분께 돌리며, 그 분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답하실 것이라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에서 시작하여, 믿음을 거쳐, 하나님께서 주신 답을 통하여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답이 우리에게 말을 하건, 침묵을 하건간에 말이죠.”


“….그렇군.”


소년의 대답을 들은 셈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을 뻔 하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휘젓고 계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자신 앞에 있는 아이의 마음을 휘저어 요동치게 하고 계심을 느꼈다. 그래서, 장난을 치듯, 셈은 땅을 거스르고 살아가는 이 청년을 시험 해보고 싶어졌다. 마치,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주를 바라보며, 어찌 재롱을 부리려나 하는 마음이었다.


“자네가 섬기는 분께선, 지금 자네가 사는 이곳을 다스리는 통치자보다 높은 분이시란 말이지?”


“맞습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여길 다스리는 왕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당장에 자네 신변이 위태로워 졌을 것이네 . 내가 만일 자네였다면, 자신이 하는 말에 더욱 신중을 기했을 게야.”


“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내 주께서 허락하신 어른들께 순종할 것입니다. 그 분께서 허락하신 모든 주인, 보살필 자들에게요.”


‘그렇단 말인가….그렇다면….’


셈은 자신의 입가에 드러나는 미소를 애써 숨겨가며,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만약에 내가 왕이라면, 자네는 나에게 절하고 내 명령에 복종할 텐가?”


“물론, 지금 이곳을 통치하시는 분의 땅에 살고 있으니, 전 왕의 명령에 순종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저도 왕이라면, 왕께선 어찌 하시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답변에, 셈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가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자네 또한 왕이라 말하고 있는 겐가?! 허면, 왕이 어찌 땅도, 백성도, 재물도 없이, 이리 빈곤히 살아간단 말이더냐?”


“왜냐하면, 저는 세상이 스스로 세운 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본래의 이름은 ‘멜기세덱(의의 왕)’, 제게 주어진 이름대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의의 왕’이 네 이름이라고?!”


사람들은 이곳을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셈을 보며, 그를 ‘아도니세덱(의의 주)’이라 부르곤 하였다. 그런데, 지금 셈 앞에는 그 칭호를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하는 자가 서 있었다.


“제가 예전 일하던 곳에선, ‘말 없는 이’로 불리며 살아 왔습니다. 왕께서도 종을 그렇게 불러 주신다면 감사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제 것이면서, 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자신의 정체를 들킨 셈은 그 사실도 잊고, 그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보잘것 없는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선 샘이 솟듯이,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셈은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이 기이한 답변을 이해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네 이름이면서, 너의 이름이 아니라니? 대체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그 이름의 소유를 남에게 줄 수 있더란 말이냐?”


“내 주께서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전 그 이름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제게 이름을 빌려주신 분께선, 그 이름을 잠시 종과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을 따름입니다. 이 영광은 종이 결코 갚을 수 없는 것이기에,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야 마땅한 것입니다.”


셈은 자신의 지혜와 이성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이방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하나의 의문이 생겨 질문을 하면, 떡잎이 갈라지듯 새로운 질문이 돋아난다. 어떠한 변론을 펼치기에 앞서, 모든 입술들을 닫히게 하는 말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묘한 매력을 풍기는 이 사람이 싫지 않았다. 셈은 주위를 둘러, ‘말 없는 이’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 다 그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 뿐이었다. 이런 왕이 또 있을까….이 세상에 가장 높다 하는 존재가 가장 비천한 이들보다 상하게 살아간단 말인가?


“내 아들아, 이 세상은 선도 악도,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단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분명하신 주님의 일하심을 기억하면서, 그 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그만인 것일게야.”


불현듯, 그의 마음에 젊은 시절 그의 아버지 노아가 얘기해 주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셈은 자신의 아버지가 생전에 그를 가르쳤던 말을 다시 한번 기억하였다. 그는 다시 한번, 그가 가진 의문의 갈증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었다. 자신이 숨 쉬는 바람도 주님께로부터 온 숨결이요, 자신이 따르고 섬기는 주님의 소망은 자신의 눈을 채우는 만족이 아니리라. 크게 숨을 들이 쉰 셈이 ‘말 없는 이’에게 말을 건네었다.


“자네는 이곳에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살아가려 온 것이 아니었나? 예배와 제사에 지혜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내가 가르쳐 주겠네. “


“저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려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르신께서 괜찮으시다면, 이곳에서 주님을 경배하며 감사히 살아가겠습니다.”


셈은 그의 앞에 있는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예배자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왕임을 자각했다. 모름지기, 이 세상에 살아가는 왕들의 삶이란 자신이 바라는 모든 걸 이룰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존재였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세상 왕들의 삶이 그들의 욕심만을 채울 뿐, 하나님의 손바닥에는 아무런 발자취도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로서, 셈은 진실된 왕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그는 이 세상 왕들의 위에 계시며, 지존자 되신 왕중의 왕께서 한 분 계심을 다시금 깨달았다. 자신이 갈 수 없는, 가기도 싫은 가장 낮은 곳에조차 내려 오셔서 다스리고 계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이제서야 조금은 알게 된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보고 싶었다. 사람이 이루지 못 할 소망을 저 ‘말 없는 이’의 뒤에 계신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루어 나가실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셈은 그의 바람대로 자신의 조그마한 땅, ‘말 없는 이’가 사는 곳을 내주어, 그가 그 곳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며 살아갈 수 있게 도왔다. 주님을 믿는 이들과 그들의 원수마저도 통치하고 계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왕의 친절함으로, 그가 살고 있는 마을에 작은 땅을 얻게 된 ‘말 없는 이’는 병든 자들, 마을에서 쫓겨난 자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이 소식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되어 퍼져 나갔다. 사방에서 만민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아름답거나, 빼어나거나, 훌륭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가난한자, 배 곯는 자를 비롯하여 문둥병자, 불구자, 버림받은 자, 사람 구실을 못하는 자들이 그의 백성이 되었다. 모든 질병을 떠안듯이, ‘말 없는 이’는 그들을 자기 품에 받아 들였다. 때로는, 자신의 병마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돌보기도 하였고, 직접 그들과 함께 지내기도 하였다. 그의 나라가 여러 가옥에서 한 마을로 커져 나갈수록, 주변 왕국의 거리는 더욱 깨끗해져 갔고, 세상 왕들의 백성들은 더욱 아름다워져만 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이 더럽고 부정하다 여겨 쫓아낸 사람들을 떠 맡은 나라를 기억하지 않았다. 작은 망대 하나 없는 ‘말 없는 이’의 왕국은 다른 의미로 난공불락의 요새, 넘볼 수 없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도적들도 다가가길 꺼려하는 그의 왕국에는 세상이 눈독들일 만한 조그만 장신구 하나 존재치 않았다. 가난한 백성들은 서로가 함께 일하며 양식을 구해 나눠먹는 일이 태반이었고, 고기를 먹는 날은 다른 평범한 이들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말 없는 이’의 백성들은 자신들을 내치지 않고 받아주어 살게 한 이곳이 그 어떤 견고한 성보다 든든하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며, 평화로이 늙어가리라. 서로 도울 수 밖에 없는 이 가난한 땅에는 다른 나라가 가지지 못하는 은혜, 참 평안이 존재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작디 작은 왕국을 가리켜 ‘믈룩흘랔(더러운)’이라 부르며 조롱하였다. 하지만, ‘말 없는 이’를 아는 셈과 ‘말 없는 이’의 백성들은 이 왕국을 ‘살렘(평화)’이라 불렀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복음 11:28-30)



‘말 없는 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면, 세상이 섬기는 신들이라 불리는 우상이 아닌,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림자도 없으시는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살렘에 정착하여 살아가게 된 사람들은 셈과 ‘말 없는 이’가 섬기는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왕, 하나님의 종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가는지 보고 배우게 되었다. ‘말 없는 이’는 온유한 품성을 지녔지만,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자들을 옹호하거나 다독이진 않았다. 그들에게 때로는 말로 다그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가슴 아파하며 혼자 하나님과의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그런 왕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가 스스로를 없다 여기며 살아가는지에 의문을 가졌고, 그들은 ‘말 없는 이’의 뒤에 영존하시는 하나님을 한걸음 한걸음 깨달아 갔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왕을 보며 느꼈던 빼어난 선함과 거룩함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또한 그들의 왕인 ‘말 없는 이’가 그의 주님, 곧 태초 전부터 계셨고, 그들이 이 땅을 떠난 후에도 살아계시고 함께 하실 하나님의 그림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들도 그들의 왕인 셈과 ‘말 없는 이’가 섬기는 하나님을 그들의 주님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들이 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 정하신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살렘에 주님을 믿는 백성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곳에 사는 자들 중에, 자신의 삶을 부족하다 여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맛 본 사람들에게, 그들의 형편과 지위는 헛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 분의 백성이요, 만유의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종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그들 앞에 있던 그들의 왕도 알아갔다. 이런 걸음이었고, 이런 마음이었구나….이런 슬픔이 있었고, 이런 감동이 있었구나….하나 하나 그들의 삶이 그들의 조상들이 믿었던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 한 하나님 안에서 다스림 받고 있단 사실에, 놀랍고 기쁠 따름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말 없는 이’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갔다. 그러나, 주님의 만족은 사람들의 것과는 달리, 여전히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짧은 겨울 해와 여름 달처럼, 살렘의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보다 그들의 왕인 ‘말 없는 이’에게 의지하고 따라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경위는 생각보다 짧고 갑작스레 그들에게 찾아왔다-‘말 없는 이’의 몸이 점점 수척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져만 갔고, 시종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혼자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짧아졌다. 아무래도, 그가 돌보는 병자들의 병이 옮은 듯 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등잔의 불이 바람에 일렁이듯이, 그의 생명이 꺼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말 없는 이’의 상한 몸을 보며, 걱정되는 마음에 그의 곁에 남아, 항상 지쳐있는 그를 돌보았다. 행여,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의 부재를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오늘 내일 할 것만 같은 그들의 왕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하지만, 그들의 안색과는 달리,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말 없는 이’의 표정은 한결 같았다. 마치, 아직 자신이 죽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와중에, 세상에는 큰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의 나라가 왕성하던 때에, 큰 반란이 일어났다.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왕 곧 소알 왕, 총 다섯명의 왕들이 이들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대적하였던 것이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진두로 이루어진 네 왕들의 군대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다섯 왕들의 동맹군은 싯딤 벌판에 모였다. 마침내, 그들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이 싸움은 다섯 왕들의 패배로 끝나게 되었다. 네 왕들의 군대는 도망친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의 음식물과, 그들의 백성들과 가축들을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사로잡혀간 사람들 중에선, 셈의 먼 후손인 아브람의 조카 롯도 포함되어 있었다. 셈은 아브람이 그들의 무장한 병사들을 이끌고 네 왕들을 치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주님 되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가 끝난 직후, 자신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입을 열었다.


“아브람과 그가 키워 훈련시킨 장정들은 그들의 원수를 쳐 물리칠 것이다. 비록, 그들의 수는 적을지라도, 그들의 뒤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셈은 자신이 모은 사람들과 의논하여, 조카 롯을 구하러 간 아브람을 돕기 위해, 그들이 먹을 식량을 조달하기로 결정하였다. 서둘러 준비하기 시작했으나, 다른 나라에 비해 가난한 자들이 많이 모인 왕국의 열악한 환경으로 준비가 늦어지면서, 아브람에게 떠나는 길이 조금씩 지연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더욱 부지런히 일을 진행하였다. 발이 빠른 자들이 모이고, 나귀의 등에는 아브람의 무리가 싸움 이후 먹을 식량들이 얹혀 쌓였다. 그 가운데에는,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왕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를 준비하러 자신의 장막으로 급히 발을 옮기는 ‘말 없는 이’도 있었다. 숨을 헐떡인 채, 거동이 불편한 그를 보면서, 셈은 걱정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겠는가? 자네 몸이 여실히 좋지 않아 보이네만. 마음만으로도 고맙네. 자네가 전심으로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들을 섬기는 것에 의심할 자는 없다네.”


고통에 몸부림치는 ‘말 없는 이’는 왕의 말을 듣고 말하였다.


“내 주여, 호의에 감사합니다만, 저는 가야만 합니다. 제 몸보다 더욱 중요한 하나님의 일을 전해야만 합니다.”


주님의 지혜가 충만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다시 한번, 셈은 그의 눈에서 처음 만났던 때와 같은 맑은 눈을 목격하였다. 땅에서 솟아 오르는 샘물과 같은 눈이었다. ‘말 없는 이’를 말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셈은 그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순순히 보내 주었다.



‘말 없는 이’의 시종은 한숨을 쉬며, 그가 섬기는 왕의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신이 왕의 손길에 이끌려, 이곳에 산지도 날을 셀 수 없었다. 세상과 비교할 때, 배는 여전히 굶주리고 삶은 고달프게 느껴지나, 참 평안이 존재하는 살렘은 자신이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이었다. 만약 자신들의 왕이 죽는다면, 앞으로 이곳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시 혼자가 되어,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은 더이상 감당키 어려웠다. 이런 저런 생각이 겹친 채, 고개를 돌린 시종은 병석으로 누워 걷기도 힘들어 하던 자신의 왕이 예전처럼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여 그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말 없는 이’가 그에게 말하였다.


“제사에 쓸 재료가 필요하구나.”


‘말 없는 이’의 시종은 왕의 갑작스런 요청에 놀라, 몸을 떨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 나머지, 이웃들과 같이 제사에 쓸 고기에 손을 댄 것이었다. 어찌할 줄 몰라, 눈만 굴리고 있을 때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걱정 말거라. 셈 어르신, 우리 왕께서 당장 필요로 하시는 건, 여러 사람들이 요기할 빵과 포도주 정도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사람 몇을 모아, 지금 당장 반죽을 시작하자꾸나.”


제사에 찾는 것이 고기가 아니란 소릴 들은 종은 얼른 왕의 명을 시행하려 하였다. 그 때, ‘말 없는 이’가 그에게 말하였다.


“내게도 반죽할 거릴 가져오너라. 내가 직접 빵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내게 이 빵과 같이 먹을 포도주를 내어 다오. 이 두가지로만,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것이다.”


시종은 자신의 주인이 전하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주인의 명에 따라 음식을 준비하면서 이를 곰곰히 헤아려 봐도,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존귀하시고 높으신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먼저 섬기고, 어떻게 하나님께 경배드릴지 가르쳤던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주인이었다. 자신의 왕이 준비 하려는 이 변변찮은 음식들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오늘은 내가 바깥에 나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구나. 너는 사람들에게 알려, 내가 말한 것처럼 떡과 포도주를 먹으면서, 존귀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전하거라. 혹여나, 다른 음식을 먹는 사람이 없도록 엄히 경고하거라. 오늘이나 내일이나 이것으로 충분하니까.”


‘말 없는 이’는 부푼 빵을 눌러 가라 앉히고, 가죽에 포도주를 담아 짐에 실었다. 그의 시종이 걱정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내 주여! 가실동안 마실 물을 준비하리이까?”


그리 물은 종에게 왕은 고개를 돌려, 인자하지만 변함없는 얼굴로 답하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These ‘is’ enough)


‘말 없는 이’는 그의 종들과 자신이 만든 빵과 포도주를 챙겨, 서둘러 셈의 뒤를 따라 아브람이 돌아오는 길목으로 향하였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식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1:23-26)


- Jun, 9th,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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