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그림자(3)
- 2021년 6월 9일
- 1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7월 9일

3) 누구를 찬송하는가
“아브람아, 너는 유일하시고, 만유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기억하거라.”
아브람이 노아의 입에서 들은 마지막 가르침은 너무나 쉬운 말처럼 들렸다. 자신의 믿음의 조상에게서 들은 이 말씀은 젋은 시절의 그에게 살아있는 고백으로 다가왔다. 아브람은 자신의 조상들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배웠다. 또, 그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끝에 물로 멸망 하였다가 다시 번성 하였지만, 여전히 온 땅의 주인이신 분을 잊어 거역하고 반역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거짓 없는 가르침을 통하여, 아브람은 세상을 거부하는 진실을 따라 살아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본토 고향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곳으로 거처를 옮겨갔다. 수 많은 곳을 둘러 보았고, 별의별 일을 다 겪어왔으며, 여러 사람을 만나 보았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자신과 자신의 조상처럼 주님을 고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아브람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믿음을 행함으로 옮겨, 그의 아버지와 고향 땅을 떠나, 정처없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향하였다. 이 여정 가운데, 아브람은 그가 조우하는 객들과 이웃들에게, 존귀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전파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를 비웃었고, 어떤 이들은 그의 말을 겸허히 경청하였다.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아브람은 영광과 기쁨을 하나님께 돌렸다. 이런 생활이 하루 이틀 지나고, 그의 지인들 중에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아브람은 믿음의 생활 가운데 커다란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된 이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그의 곁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떠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그가 친자식처럼 아끼던 조카 롯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브람은 자신이 지켜가는 믿음을 붙들며 생긴 외로움에 좀먹혀 가고 있었다.
그는 이 나그네의 삶을 통하여, 그의 인생에 다른 사람이 가지지 않는 크나큰 외로움이 존재하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 되었다. 자신의 말을 따라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려 한 아버지와 가족과의 이별은 순종에 의한 일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고픈 아쉬움이 컸다. 자신의 아들과 같았던 롯과 그의 가정이 아브람의 곁을 떠났을 때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낙담하고 상심한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의 약속을 상기 시키셨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은 어제의 자신보다 커져갔고, 주님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렇기에, 너무나 명료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소망과 아브람이 목격하는 현실- 곧 아브람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보내는 날들 사이에 존재하는 틈은, 그 분의 임재 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주님의 약속과는 달리, 너무나 동 떨어져만 보였다. 그는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보낸 이들과 함께 온전히 이뤄지지 않는지 그 어떤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그가 밟는 땅과 먼지처럼 많은 후손들을 약속하셨고, 아브람은 그의 주님을 한결같이 신뢰하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지쳐만 갔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살아간지도 여러 해가 흘렀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있었으나, 자신의 삶에 가끔씩 고개를 내밀어 그를 괴롭히는 불안과 정죄 또한 공존하고 있었다. 존귀하신 분의 명을 받들어 살아간지 날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삶은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물론, 그의 힘은 날이 갈수록 점점 강대해져 갔고, 그가 돌보던 가축들은 배로 늘어갔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집안 내에 분쟁과 다툼 또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고, 아브람 또한 친아들로 여기던 조카 롯이 그의 곁을 떠나간 시기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네 눈에 보이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주님의 약속은 한결 같았다. 아브람이 힘들 때나, 부유할 때나, 두려울 때나, 담대할 때나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신 분이셨다. 그러나….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리 확신에 차 있건만, 지금 자신의 마음 한 가운데 잔재하는 쇠한 영혼, 지쳐만 가는 아브람 자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브람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그를 찾으시고 당신을 드러내셨다. 그 분은 그의 길을 예비하시고, 그의 아내 사래를 바로의 손에서 건지셨으며, 자신의 목숨 또한 부지케 하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 설령, 자신이 주님을 의심하고 엇나가 진흙탕에 뒹굴 때에라도, 주님께선 당신이 하신 맹세를 반드시 이루실 분이시라. 하나님을 더욱 알아갈수록, 아브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비천한 자신 가운데 존재하는, 이 큰 구렁텅이 같은 틈을 감당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감싸주시며 세월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마음이 혼란한 와중에도, 해와 달은 성실히 뜨고 지기를 반복 하였고, 아브람은 믿음을 통하여 여전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는 어려움과 자신의 실수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쁜 소식을 소망하며, 이를 기다리는 예배자였다. 그런 그에게 들려 온 소식은 롯이 적국에 사로잡혀 끌려갔다는 비보였다.
자신의 유업을 물려줄 상속자가 없던 아브람에게 롯은 아들과 같은 존재요, 아버지를 여읜 롯에게 아브람은 친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 조카와 그의 식솔들이 잡혀갔단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훈련받은 자신의 사병들과 함께, 그들이 잡혀있는 단 지역으로 부리나케 추적하였다. 아브람은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자신의 병사를 몇 패로 나누어 그의 적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찌나 용맹하였는지, 아브람은 네 왕들의 동맹군을 상대로, 다메섹을 넘어 호바지역까지 그들을 물리치는 쾌거를 이뤄내었다. 결국, 세상의 왕들이 일으킨 전쟁은 허무하게도, 하나님의 사람인 아브람의 개입으로 끝마치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그는 조카의 목숨과 그의 가족들, 동맹군이 빼앗은 재산들을 모두 구해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셨다면, 아브람의 무리가 바닷물처럼 차고 넘친다 한들 일궈낼 수 없는 승리였다. 아브람이 구출한 사람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들은 아브람과 그의 장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돌렸다. 하지만, 승리로 기뻐해야할 아브람의 얼굴에는 조카를 구했다는 안도와 평안은 있을지언정, 자신을 향한 기쁨이 차오르진 않았다. 아브람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자신의 지쳐가는 마음이 뒤섞여, 서로 싸우는 듯 보였다. 왕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에게 일정한 재물을 가지라 할 것이고, 그것은 아브람의 재산에 쌓여, 더욱 빛나게 될 터였다. 하지만, 곳간을 가득 채우는 재산들을 보아도, 채워지지 않는 만족감이 아브람에게서 가시질 않았다.
아브람은 자신이 구해낸 사람들과 함께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예루살렘 근처를 지나고 있을 때, 전쟁에 패해 도망쳤던 소돔왕이 아브람의 승전 소식을 듣곤, 그를 맞이하기 위해 사웨 벌판으로 마중을 나왔다. 때마침, 셈과 그의 신하들도 그 곳에 도착하여, 다 함께 아브람을 맞이하였다. 아브람은 저 멀리서 자신을 반기는 그의 오랜 조상을 목격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믿음의 선조들의 재회였다. 기쁜 마음에, 그는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그의 어르신을 맞이 하였다.
“어르신, 내 주여! 이런 곳에서 뵙게 되다니요?! 마치 꿈만 같습니다.”
“샬롬, 아브람. 자네가 큰 일을 치루고 그 곳에서 승리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론, 더욱 부리나케 달려 왔다네. 또한, 지친 자네와 자네 사람들을 위해, 이리 먹을거리도 준비해 왔지.”
아브람은 셈이 가져온 음식보다, 같은 주님을 믿는 하나님의 제사장을 만난 일이 더욱 기뻤다. 그에게 있어선,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나눌 사람이 너무나 간절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소돔 왕 베라와 함께 자리에 앉아, 빵을 뜯으며 회포를 풀기 시작하였다.
아브람과 그의 수하들은 살렘의 왕 아도니세덱이 선사한 먹거리로, 그들의 허기를 달랬다. 장정들의 몸에 생기가 돌아오고, 다시 힘이 넘쳐났다.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은 기쁨이 그들에게 찾아왔다. 셈과 아브람은 오랜만에 만나, 지난 날까지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이야기는 더욱 깊어졌고, 셈은 자신이 만난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들 곁에서 ‘말 없는 이’는 음식을 나눠주며, 시종을 들고 있었다.
“내게 있어서, 저 청년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네. 그는 그 누구보다 깊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이지.”
“저 소년입니까?”
그 때, ‘말 없는 이’와 아브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을 섬기는 빵과 포도주를 담은 병이 있었다. 셈의 지시에, ‘말 없는 이’는 양 손에 각각 빵과 포도주를 담은 잔을 하나씩 쥐고, 그들 곁으로 나아갔다. 셈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 지금이 그 때가 아닐까 하네.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그래서, 우리도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마침내, 아브람과 살렘의 왕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였다. 아브람은 적잖이 놀라, ‘말 없는 이’를 주시 하였다. 병들어 비쩍 마른 몸에, 세상 사람들이 귀히 여길만한 것은 어느 하나 없어 보였다. 아브람과 그의 동료들은 갑자기 자신들 앞에 나타난 이 허약한 왕을 바라 보았다. 그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이번 승리에 관해, 어르신들께 복된 말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 종은 이 고백을 하기 위해 살아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말 없는 이’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 그의 말은 그의 외관처럼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말이 왕이지, 그의 모습에 왕의 위엄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살렘을 다스리는 왕은 지도자들 앞에서, 남들이 보기에 볼품 없는 떡과 포도주로 예배를 드리려 하고 있었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특이한 제사장의 모습과 그의 축사, 그의 제사 방식에,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하여, 그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말 없는 이’에게서 한번도 나온 적이 없는 우뢰와 같은 목소리가 뱃속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어찌나 우렁찼던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 목소리에 움찔 할 정도였다.
“하늘과 땅의 주인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그리고 ‘말 없는 이’는 하늘을 향하였던 그의 고개를 돌려, 아브람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자신을 향한 선포에, 아브람의 몸이 얼어 붙었다. 그런 그에게, ‘말 없는 이’는 아브람을 똑똑히 주시하며,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내 주께선 셈 어르신과 같이, 만유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여쭙고 싶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던 것일까요?”
살짝 입이 열린 채, 그의 말을 경청하던 아브람은 정신을 가다듬고, 그의 앞에 서 있는 제사장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우상을 섬기는 아버지와 사람들을 보며,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고 그것들을 신이라 지칭하는 현실에 의아해 왔었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나는 이 세상, 하늘과 땅을 보면서 신을 찾으려 했지만,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묵상하며 다시 한번 회의감을 느꼈다네. 그러다, 난 마침내 우리 조상들께서 섬기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께서는 나에게 당신을 드러내셨네. 지금 나는 그 분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 하늘과 땅에 주님 같으신 분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네. 그렇지, 자네가 말한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닌,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지 않으셨다면, 나는 몰랐을 터일세.”
“ 주님께선 어르신의 길을 예비하셨고, 어르신의 모래와 같은 후손들을 예비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시 여쭙겠습니다. 어르신께선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계십니까? 과거의 어르신께 묻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 주께선 어찌하여 우리 주님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십니까?”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말을 건네었다. 아브람은 그의 말에 깊은 심연,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건너, 맨 처음 당신 스스로를 참 주님이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기억해 내었다. 하나님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고백에, 기뻐하고 눈물 흘렸던 아브람. 젊고 어린, 그러나, 하나님만으로 기뻐하였던 아브람 자신을 보게 되었다. 거룩하신 주님의 복된 약속이 있기 전, 그는 주님 한 분만으로 이미 충만 하였던 것이었다.
‘말 없는 이’의 축사를 들은 아브람은 기쁨 가운데, 그의 하나님 앞에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을 기약 없는 여정이라 욕하던 자들의 틈 속을 헤쳐 나왔으나, 앞날은 막막하고 자신의 보물 같았던 조카는 자신의 곁을 떠나갔다. 자식 없이 늙어만 가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세상 가운데, 아브람은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그 분의 확신 된 약속이 그의 안에 늘 함께 하였지만, 여지껏 그의 눈에 드러난 적은 없었다. 예배는 그의 삶이 되었으나, 해가 지남에 따라 아브람 그 자신이 온전한 예배가 되진 못하였다. 자신의 병졸들을 이끌고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그의 동맹군 왕들을 쳐부수고 왔을 때에도, 아브람은 이 전쟁과 고통 가운데서 자신이 아끼는 롯과, 조카의 가족과 재산을 지켜내지 않으신 하나님께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에게 이와 같이 선포하는 왕 같은 제사장을 목격한 아브람은 자신도 모르게, 뼛 속 깊이 그의 골수를 쪼개는 말씀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 그의 주님 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승리도 주님의 것이요, 아픔도 주님의 것이었다. 그는 체면도 잊고 엎드러져 누우며, 자신의 심정을 만유의 주님께 고백 하였다.
“내 주께서 옳으십니다! 당신의 지혜를 젊은이의 입술로 선포하신 주 하나님, 우리 하나님만이 바로 참되십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옳으시고, 그 분의 침묵도 공평하십니다! 공의의 왕 되신 내 주를 통해서,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을 찬양케 하신 우리 하나님을 새롭게 찬양하겠습니다!”

해가 지고, 달과 별들이 반짝이는 밤이 되어, 평안을 찾은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 누워 눈을 붙였다. 그 시각에도, 아브람은 ‘말 없는 이’와 말을 나누고 있었다. 사그라지는 불빛 가운데, 하늘은 땅보다 더욱 밝게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불씨를 어지르며, 아브람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는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저는 하나님께서 이 종을 그냥 내버려 두실 때가 가장 힘듭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른다 여기시는 마음이 생길 때,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주님 없이는, 내일 양식도 어찌 구할지 헤매이는 존재이니까요.”
“그런가….나도 자네처럼 똑부러지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지금 무엇이 내 믿음에 걸림돌이 되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네. 내 주께서 주시는 믿음보다 죄악되고 연약한 내 마음? 고향을 떠나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이 삶? 내 유산을 물려 받을 보이지 않는 내 자손? 과연 이런 나에게, 주님께선 어찌 이리 종을 자애롭게 이끄시는지 모르겠다네. 난 세상의 신들을 아주 잘 알고 있네. 그들의 눈에는 자비라곤 찾아볼 수 없고, 그런 그들에게 사람들은 절하고 자신들의 풍요를 빌지. 그런 세상에서, 주님께선 이 못난 죄인에게 당신을 나타내셨던 거고. 허나, 주님을 더욱 알아갈수록, 그 분의 높으심을 바라보는 나 자신은 주님께 더욱 좋은 것으로 바칠 수 없으니, 마치 내가 세상 가운데 주님을 모르고 살던 때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네.”
아브람의 탄식을 잠자코 듣고 있던 ‘말 없는 이’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것을 왜 저한테 얘기하고 계십니까?”
“왜 그러냐고?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네이기에 말하는 것일세. 하나님은 모든 것을 꿰뚫고 모든 왕들 위에 서 계신 분일세. 그 분의 말씀은 정당하고, 논의 할 필요가 없네. 하지만, 주님 앞에서 의심하고 그 분의 의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나는 그렇지 못하지. 어찌 내가 그 분께, 그 분의 말씀에 반하는 거짓된 마음과 죄과를 넘긴단 말인가? 또,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짐들을 이야기 한다 한들, 과연 세상 사람들이 내 한탄을 들어는 주겠는가? 만약 자네라면 어떻게 하였겠는가?”
“제가 다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어째서 어르신의 모든 한숨을 듣고 계시는 우리 주님께 말씀드리지 않으시냔 말입니다. 어르신의 마음을 보시고선, 하나님께서 화를 내실까요? 절대 그러지 않으실 겁니다.”
“나는 나 자신을 보고 또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 분의 거룩하심을 감당 할 수가 없다네. 어찌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이리 비천한 사람이 부른다고 나아 오실 수 있단 말인가?”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가 주님의 사람에게 말하였다.
“아브람, 내 주께서는 한 무리의 족장으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또 하나님의 신실하고 충성 된 종으로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어르신께서 살아가시는 방식이 잘못 되었다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치만, 어르신이 우리 주님 안에서 좀 더 어린 아이와 같이,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꿰뚫으시는 분이시요, 어둠을 가로지르는 빛처럼 임하는 분이심을 우리는 잘 압니다. 하지만, 어찌 아버지가 자식의 마음을 안다 하여,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하겠습니까? 자식의 짐은 온전히 그를 낳은 이의 몫입니다. 자식이란 부모가 오롯이 사랑하여 태어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정하려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죠.”
‘말 없는 이’의 말에, 아브람의 귀가 뚫리어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을 향한 정죄와 죄악이 더 크다 여기는, 주님께 나아갈 수 없는 마음이 여태껏 그의 걸음을 막고 있었다.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아픈 걸 아프다 바로 말하고, 자기를 모르는 사람도 고개를 돌리게 할 만큼 큰 소리로 울부짖지요. 세상의 신들이라 불리우는 존재는 불에 쉬이 타는 나무요, 입을 떼지 못하는 침묵하는 돌덩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어르신 곁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어르신에게 찾아 오시는 주님께 기대고 그 분과 동행 하십시오. 우리의 선조들의 선조께서도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셨습니까? 동행은 서로를 모르는 사람끼리 이뤄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내 주께선 어찌하여 우리 주님이 당신의 약속을 상기 시키러 찾아 오시고, 어르신과 함께 하시려는지 깨닫지 못하십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아브람에게 말하고 있는 ‘말 없는 이’의 음성은 무겁고 눈물을 흘릴 듯 떨리고 있었다. 아브람은 그의 말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브람이 잠잠한 목소리로, 그에게 고백 하였다.
“만유의 주님이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와 내 자손에게 당신의 약속이 깃든 땅을 허락하셨네. 나는 그 약속을 붙들고, 또 붙들린 채 이리 살고 있지. 그 믿음의 삶은 나 혼자 이뤄낸 것이 절대 아니라네. 주님과,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보냄 받은 이들이 일궈낸 값진 보물이지.”
“맞습니다. 나 홀로 힘들 때에도 주님께선 종과 함께 하셨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제게 친히 종을 돌보시고, 또 함께 하실 가족, 주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허락하셨으니까요.”
불씨가 꺼지고, 하늘의 반짝이는 별빛만이 그들을 축복하였다. 스스로 옭아맨 사슬에서 벗어난 아브람이 ‘말 없는 이’에게 말하였다.
“고맙네, 자네가 해준 조언들이 응어리진 마음을 달래주었네.”
“저를 보내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지….”
‘말 없는 이’의 말에 납득하며, 아브람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간만에 그의 입에서 나온 자연스런 미소였다.
“그렇고말고. 우리네 삶에 주님께서 안 계셨더라면, 과연 어떠하였을까? 하늘은 빛을 잃겠고, 푸른 식물은 한 줌의 먼지가 됐겠지….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우리는 삶을 주신 분을 종종 잊고 살아간다네. 바로 지금, 우리 옆에 계시고 동행 하시는데도 말일세.”
아브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각자의 처소로 향하였다. 순간, 아브람이 고개를 돌려, ‘말 없는 이’에게 물었다. ‘말 없는 이’도 고개를 돌려, 아브람을 쳐다 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답해주게. 어찌하여, 우리 주 하나님께서는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우리 같은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겐가?”
‘말 없는 이’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간결하게 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창세기 18:17-19)
다음 날, 두 눈이 맑아져 하나님을 기뻐 기억한 아브람은 무리와 헤어지기 전, 자신이 얻은 재물 중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치었고, ‘말 없는 이’는 그가 받은 것을 다시 그의 왕에게 바치었다. 후에, 셈은 그것들을 갖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가, 다시 하나님께 돌리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지극히 높으신 주 하나님께, 나의 손을 들어서 맹세하오. 그대의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끈 하나라도 가지지 않겠소.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덕분에 아브람이 부자가 되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을 것이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소. 다만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함께 싸우러 나간 사람들, 곧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에게로 돌아갈 몫만은 따로 내놓아서, 그들이 저마다 제 몫을 가질 수 있게 하시기 바랄 뿐이오."
아브람은 그가 얻은 재물은 자신을 도운 이들을 위한 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채, 그의 집인 마므레 상수리나무로 돌아갔다. 아브람은 만유의 주인 되신 하나님만을 의지 하였고, 하나님께선 그에게 불어 넣으신 믿음 가운데 당신의 약속을 보장 하셨다. 아브람과 ‘말 없는 이’는 그들의 발이 땅에 붙어 있는동안, 두 번 다시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님께서는 그들 전부에게 항상 함께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은밀한 곳, 그들 스스로도 다가갈 수 없는 마음 속 깊숙한 곳마저 임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더욱 가까이 거하시는 주님을 그들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들 곁에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었다.
그 날 이후,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을 찾아 오셨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주님을 대면하였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그에게 말씀을 주신 주님께 여쭈었다. 자신 속 가장 깊숙히 간직해 두었던, 혹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던 자신의 마음을 마침내 주님께 털어놓았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출신의 엘리에셀뿐입니다.”
그의 물음은 어린 아이의 눈물처럼, 막힌 둑에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런 그를 주님께선 아시고 지켜보셨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모습은 하나님의 눈에 또렷이 보였다. 꽁꽁 감춰놓았던 그의 말라있던 눈가는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주님께서 저에게 씨를 주지 않으셨으니, 보십시오, 이제 저의 집에서 키운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그 말씀을 하시고, 주님께선 아브람을 밖으로 이끄셨다. 아브람의 눈 앞에,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그를 반기었다.
“하늘을 우러러, 저 뭇별을 셀 수 있나 보아라.”
하늘에 모래를 뿌린 듯, 빛나는 별들이 아브람의 눈을 쬐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가 날마다 마주하던 밤하늘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눈을 밝혀 보게 된 주님의 영광은 달랐다. 그것은 별들의 영광이 아닌, 주님께서 그의 자손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실 영광이었던 것이었다. 그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그 어느 보물, 재산보다 크고 값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너의 자손이 저 별들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아브람은 깨달았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소망 이외에, 세상이 꿈꾸는 그 어떤 것 하나 그를 만족 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자신을 높이는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의 뜻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란 축복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모든 염원을 이루실 것을 전부 받아 들였다. 그 어떤 말씀도, 어떤 예언도 기쁘게 받으리라. 아브람은 손을 들어, 하나님께서 바라보라 하신 별들을 향해 믿음의 손을 뻗치었다. 그는 만유의 주님께서 그에게 주시리라 약속하신 선물을 받고 품에 안으리라. 그는 주님의 약속을 믿음을 통하여, 눈으로 확인하고 기뻐하리라. 그리고, 그는 기뻐 하였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창세기 15:6)
그러다가,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그 부자도 죽어서 묻히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다.
(누가복음 16: 22,23)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하였고, 마침내 보고 기뻐하였다."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나이가 쉰도 안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
(요한복음 8:56-58)
- Jun, 9th,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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